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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거점 - 종(種)기원(起源)을 찾아서”

 

 

‘과학’과 ‘신화’의 경계, 혹은 ‘상징’과 ‘지표’의 경계를 넘어서

 

박영욱_숙명여대 교양학부

 

 

조각가 타틀린(Vladimir Tatlin)은 러시아 사회주의 10월 혁명을 기념하기 위한 기념탑의 모델을 발표하였다. 400미터가 넘는 실물 대신 1920년에 최초로 6미터의 소형모델만을 발표하고 결국에는 탑이 건축되지는 않았지만 타틀린의 탑은 당대의 예술가들에게 엄청난 영향력을 끼쳤다. 타틀린 이전까지는 대부분 위엄 있는 왕이나 장군의 모습을 한 조각상이 기념비의 역할을 하였다. 전통적인 조각상과 완전히 다른 타틀린의 기하학적인 조각상은 소비에트 작가들에게는 신화의 세계를 벗어나 인민을 위한 과학의 세계로 들어가는 상징으로 비춰졌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정작 이렇게 기하학적인 탑은 인민을 위한 과학적 세계관을 상징하는 기념물이라기보다는 소비에트의 근대화를 강압적으로 추진하고자 하는 프로퍼갠더(선동, propaganda)의 상징물처럼 되어버린 듯하다. 심지어 이런 유형의 탑은 1970년대 혹은 1980년대 우리나라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것이었다. 과학기술과 미래지향을 상징하는 이 기하학적인 탑은 한편으로는 정치적인 선동을 위한 신화적 상징이기도 하였다. 이제 더 이상 상징의 유효기간을 상실한 이 탑들은 흥미롭게도 지난 모더니즘 시절의 흔적을 담아내는 ‘지표’(index) 기호처럼 보일 따름이다.

 

김태은 작가의 “지방거점 – 종기원을 찾아서”는 얼핏 기념비적인 설치물처럼 보이지만 타틀린의 기념탑과는 정반대의 의미를 지닌다. 타틀린의 탑은 봉건귀족과 부르주아지를 포함하여 과거 지배계급의 비합리적인 주술적 통치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해방의 사회를 가능하게 하는 인민의 무기로서의 과학을 상징화하고 있다. 이에 반해서 김태은의 작품은 그러한 상징화자체가 다름 아닌 과학을 숭배하는 신화적인 상징에 다름 아니며 주술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역설을 보여준다. 이번 전시의 핵심이 되는 설치물의 제목만 보더라도 이 사실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주술적이거나 전기적인 저장장치’라는 제목에서 ‘전기적인’이라는 수식어는 다분히 과학적이라는 단어를 연상시킨다. 이 제목은 작가의 설치물이 단지 주술적인 것만도 아니며 단지 과학적인 것만도 아니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오히려 서로 상반된 의미를 지닌 두 항목의 모순적인 공존이 이 작품의 핵심인 것이다.

 

이 작품은 커다란 투명공과 그 투명공의 주변을 전기기차가 무한히 반복 회전 운동하는 원형의 트랙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그 투명공 안에는 LED 장치에 의해서 반짝반짝 빛나는 별이 들어 있다. 이 별은 외부로부터 전원을 공급받아야 빛을 발할 수 있다. 별을 빛나게 하는 전원 공급의 역할은 무한 반복하는 트랙 위의 기차가 담당한다. 트랙에는 곳곳에 게이트가 설치되어 기차가 게이트를 통과할 때마다 전기를 공급하여 별이 빛나게 되며 게이트 자체에 설치된 전구에서도 빛이 발생한다. 게다가 별을 보호하고 있는 투명공은 그 형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일정 정도 압력이 떨어질 경우 외부에서 공기를 공급하는 제어장치가 달려있다. 그리하여 이 작품은 자기완결적인 과학적 장치처럼 보인다. 여기에서는 어떠한 불합리한 요소나 주술적인 특성도 발견되지 않는 듯하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상황은 달라진다. 트랙을 무한 반복 회전하는 기차는 투명공이 공기압을 유지하여 형태를 보존하기 위한 에너지를 공급하기 위한 목적을 지닌다. 한편 투명공은 그 자체가 기차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자 목적이다. 분명히 목적은 존재하는 것 같지만 사실상 그 목적의 내용이 무엇인지를 말할 수 없다. 목적은 있지만 그 목적 자체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면 무의미한 것일뿐더러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행위들은 오히려 맹목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투명공 안에 별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기차의 무한 운동이나 그 운동을 위한 트랙 자체도 존재해야 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별의 존재 목적은 단지 그것들을 존재하게 위한 명분일 뿐이다. 별의 유래 자체는 알 수조차 없다. 어쩌면 그것은 외계에서 온 것일 수도 있으며, 개체들의 존재 이유를 위한 ‘일반의지’일지도 모른다. 어떤 형이상학적 의미를 부여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신화적인 요소일 뿐이다. 이 설치물은 과학의 상징이라기보다는 흔히 ‘별’이라는 도상이 그러하듯이 일종의 신화적인 상징일 따름이다. 이렇게 하여 이 과학적 장치는 너무나도 쉽사리 주술적인 장치가 되어버리고 만다.

 

그렇다고 작가의 전시가 단지 과학과 신화의 모순적 특성을 보여주고자 하는데 그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 ‘과학적이거나 주술적인’ 아니 ‘과학적이면서 동시에 주술적인’ 설치물은 우리가 직접 살고 있는 현실 공간의 알레고리적 표현이다. 트랙에 존재하는 게이트들은 우리나라에 존재하는 지방거점들이다. 기차가 게이트를 통과할 때 게이트는 트랙의 다른 부분과 구별짓기 위해서 별이라는 상징물을 통해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한다. 마찬가지로 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에서는 지방거점이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고자 상징물을 만들기 시작하였다. 이 상징물들은 지방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의미화하기 위한 목적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상징물들은 당연히 그 지방의 고유한 특성이나 스토리를 바탕으로 구현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각각의 상징물들은 그 나름대로 인류학적 토대를 지닌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작가는 이러한 지방거점을 상징화하는 상징물들을 채취하고 그것을 기록하면서 일종의 계보학을 만들고자 한다. 그는 다윈의 과학적 절차를 패러디하여 이 계보학의 과정을 ‘종기원을 찾아서’로 명명한다. 충분히 예상할 수 있듯이 이 계보학은 과학의 외양을 취하지만 물론 과학적 성과를 위한 것은 아니다. 계보학의 창시자인 니체의 용례에서도 나타나듯이, 계보학이란 특정한 도덕이나 규율이 어떤 정치적 목적에서 비롯되었는가를 밝히고자하는 정치철학적 의도를 담고 있다. 그런데 애초에 계보학이라는 학문 자체가 과학이 아닌 인문학적 장치임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그 절차를 외양상 최대한 과학적으로 구축하고자 한다. 작가는 지방거점의 상징물들을 과학적인(?) 방법과 절차를 통해서 인류학적 토대를 거슬러 올라가 그 기원에 까지 도달하고자 한다.

인포그라픽스를 활용한 상징물의 계보학적 탐색은 작가가 보여주는 과학적 절차의 핵심적인 부분이다. 88 서울 올림픽 마스코트, 혹은 대전 엑스포의 꿈돌이를 등을 비롯하여 수많은 상징물들은 이미지이다. 인포그라픽스는 바로 이러한 이미지들을 정보화하는 작가의 과학적 절차이다. 여기서 작가는 디지털 이미지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상징들을 정보화하고 그것의 계보를 추적하는 작업을 구체화한다. 작가는 여러 상징물들을 사진으로 찍거나 그래픽화하여 디지털 데이터로 기록한다. 그리고 일러스트와 같은 이미지 프로그램을 활용하여 이미지들을 합성하거나 중첩시킨다. 이 경우 데이터 차원에서는 이미지 벡터가 형성되는데 이 벡터 값을 활용하면 이미지들을 중첩하거나 교집합의 부분들을 추출해낼 수 있다. 작가는 이러한 과정 자체를 이미지화하여 지방거점 상징물들의 시조를 찾아내고자 한다. 심지어 이들 이미지를 3차원적인 공간이미지로 만들어 마치 생물체처럼 배양액이 담긴 유리병에 담아 전시하기도 한다.

 

이러한 계보학적 탐색을 통해서 작가가 발견한 것은 상징물들의 인류학적 조상의 구체적인 모습이 아닌 이들이 지니고 있는 가족적 유사성이다. 말하자면 지방의 특색을 함축하고자 하는 이들 상징물의 이미지 속에는 어떤 유사성과 획일성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트랙의 기차를 무한히 반복하게 하고 각각의 게이트들을 통과하게 만드는 투명공속의 별처럼 외부에서 주어진 상징물인 것이다. 마치 투명공속의 별이 그러한 것처럼 외부로부터 주어진 이 획일적인 이미지는 사람들로 하여금 지방거점을 무한히 왕복운동하게 하는 드러나지 않는 목적이자 강제적 힘인 것이다.

 

매우 흥미로운 사실은 작가가 지방거점의 상징들을 인포그라픽스로 드러내는 과정 속에서 합성된 이미지들이 지닌 시각적 특성을 발견하고 있다는 점이다. 가령 엑스포 꿈돌이의 다른 이미지와 중첩시킬 경우 꿈돌이와 배경의 분리는 마치 선동적인 포스터의 이미지를 연상시킨다. 이미지의 이러한 선동적인 특성이 우연적인 것인지 혹은 피연적인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작가가 이미지의 계보학을 통해서 지방거점의 상징물들을 관통하는 하나의 강제적 힘이 존재한다는 확신에 이른 것만큼은 틀림없는 듯하다. 이렇게 작가의 과학적인 작업의 절차는 결국 과학 자체도 하나의 신화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지방거점이라는 지방적 특성과 정체성을 위한 상징물들 또한 계보학적으로 보면 하나의 획일적인 강제된 신화에 불과하다.

 

그러나 작가의 작업을 단순히 과학 이데올로기 비판으로 해석하는 것은 지극히 작가의 작업을 단순화시켜서 보는 근시안적 접근에 불과하다. 진정한 예술작품은 해석가능성의 범위를 넘어서는 잉여의 부분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김태은의 작업은 이러한 특성을 잘 보여준다. 가령 어떤 예술가가 유신시대를 희화화하기 위해서 유신시대의 기념탑을 그대로 재현했다고 치자. 이 탑은 단지 유신시대의 상징물을 재현함으로써 유신시대의 정치적 의미를 비판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정치적 선동을 위한 모더니즘의 기념비 조각들은 당시 정치적 목적을 지닌 상징물이었겠지만, 현재의 관점에서 보자면 과거의 흔적이다. 그것은 정치적 상징물로서의 의미뿐만 아니라 그 시간을 살아온 사람들의 자취이자 삶의 총체를 이루는 흔적들이다. 말하자면 그것은 당시 시대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과거를 살아온 사람들에게 남겨진 일상의 흔적이기도 한 것이다. 기호학적으로 표현하자면 단순한 상징(symbol)이 아니라 지표(index)인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기호로서의 지표는 실재하였던 현실의 흔적을 담고 있는 기호이다. 가령 1970년대와 80년대의 반공기념탑의 모더니즘적인 형태는 당시의 이데올로기적 상징물이다. 하지만 그것은 동시에 조금씩 퇴색하고 있지만 그 시대를 살아온 우리에게 남겨진 흔적의 기억이다. 물론 그 흔적의 의미는 객관화될 수 없다. 크라우스의 지적처럼 ‘지표’라는 기호의 의미는 미리 정해진 바 없으며 오로지 그 기호를 발화하는 사람의 맥락이나 의도에 의해서만 채워지는 빈 기호일 뿐이다. 그 흔적은 기억에 따라서 점차 흐려지거나 퇴색할 수도 있다. 김태은 작가는 1994년 대전에서 개최되었던 엑스포의 특정 장소들에 남겨진 기록들을 구술로 낭독하여 테이프에 녹음하고 이를 반복적으로 재생시킨다. 음성들은 테이프가 반복 재생되면서 자연스럽게 열화현상에 의해서 잡음이 발생하며 명료성이 떨어진다. 마치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우리의 기억이 희미해지는 것과도 같다.

 

롤랑 바르트는 현실의 흔적을 기록한 지표는 그것을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과거로의 모험을 유발한다고 보았다. 가령 과거의 흔적을 담은 사진은 우리로 하여금 예상치 못한 과거의 기억을 떠올려 과거의 흔적을 찾기 위한 모험을 떠나게 만든다. 작가는 단지 이미지의 계보학을 구성하고 이 속에 내재한 신화적 상징의 힘을 비판하기 위해서 전국의 각지를 여행하지 않는다. 작가를 유인하는 장소의 힘은 단지 지방거점이라는 상징만이 아닌 일상의 흔적과 기억을 담은 장소의 지표적 특성이기도 하다. 그에게 예술은 과학이자 주술이기도 하지만, 상징이자 지표이기도 하다.

 

 

 

 

 

 

 

 

 

 

 

 

 

“지방거점 - 종(種)기원(起源)을 찾아서” 김태은 개인전“

  Dec, 4 - Dec, 31, 2015.

     Opening : Dec. 4(Fri) PM 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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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술적이거나 전기적인 저장장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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